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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물리치료와 작업치료의 개척자 구애련

 

 구애련(Marion E. Current) 교수는 1932년 9월 21일 캐나다 온타리오주 코발트타운(Cobalt town)에서 출생하였습니다. 아버지는 계리사, 어머니는 초등학교 교사, 두 분 모두 신실한 기독교인이었고 오타와 시청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은퇴한 남동생 아놀드(Arnold Current)가 있습니다.


 1954년 5월 캐나다 토론토 대학에서 물리치료학과 작업치료학을 전공하였고, 졸업 후 University of Alberta Hospital 그리고 Canadian Rheumatism & Arthritis Society에서 근무하였습니다. 1958년 5월 캐나다 연합교회 여성지도자 양성과정을 수료하였습니다. 그 당시 선교사를 요청한 나라는 아프리카, 인도, 한국 이렇게 세 나라가 있었는데 그 중 친숙한 한국을 택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당시 한국에는 델마 모(Thelma Maw, 한국명 모우숙) 선교사가 물리치료를 시작하고 있었고, 남동생 친구가 한국전쟁에 유엔군으로 참전하였다가 전사한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1959년 9월에 캐나다 연합교회 소속 선교사로서, 한국기독교장로회 초청으로 26세의 나이에 우리나라에 와서 1997년 2월 퇴임할 때까지 37년 동안 구애련 교수는, 물리치료사로서, 교육자로서, 기독교 선교사로서,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섬김의 지도자로서의 삶을 살았습니다. 1960년부터 1981년까지는 신촌세브란스 병원 재활의학과에서 물리치료사로 봉사하였고, 1981년부터 1997년 2월 정년퇴임을 할 때까지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 재활학과에서 물리치료학을 직접 강의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작업치료학 교수가 부족하여 외국인 시간강사들이 작업치료학 강의를 할 때 한국어로 통역을 하였습니다. 또한 이화여자대학교와 한국신학대학교의 이사로서 기독대학 교육의 발전에 기여하였습니다.


 우리나라가 경제적·정치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던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사회에서 소외당한 수많은 사람들과 독재정권에 항거하여 민주화를 위해 애쓰던 이들에게 정신적으로, 그리고 때로는 물질적으로 도움을 주었습니다. 1971년에 일어난 인혁당 사건, 그 외 빈민촌 철거사건, 양심수 가족을 위한 예배 등에 직접 참여하거나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 부분은 고 문익환 목사, 고 김찬국 총장, 박형규 목사, 그리고 김지하 시인의 모친 등을 통해 확인된 이야기입니다.


 구애련 교수는 사랑과 봉사, 그리고 검소와 절약으로 이어진 자신의 삶을 통해 주위의 소외된 이웃에게 예수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는 기독교인의 삶을 보여주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서울성남교회와 한남교회를 다녔습니다. 캐나다에서는 Dentonia Park United Church와 알파한인연합교회에 오전과 오후에 모두 다녔기에 구애련 교수가 돌아가신 후 두 교회가 공동으로 장례예배를 진행하기도 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 물리치료사를 양성하는 정규 교육기관이 없었던 1960년대에 구애련 교수는 세브란스병원에 의학기술수련원생을 모집하여 물리치료학을 강의하면서 한국 물리치료학 교육의 개척자 역할을 하였고, 연세대학교가 원주캠퍼스 원주의과대학에 우리나라 최초의 4년제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학사과정을 개설했을 때 첫 번째 교수로서 봉직하였습니다. 1982년부터 16년간 재활학과에서 재직하는 동안 400여 명의 졸업생, 15명의 동문 물리치료학 교수 배출, 석사, 박사 과정 개설이라는 결실을 거둔 후 1997년 캐나다로 귀국하였습니다.

 

구애련 교수 원주캠퍼스 방문 (2006.05.20)

 

 구애련 교수가 한국의 물리치료계와 작업치료계에 뿌린 씨앗은 크게 결실을 맺었습니다. 2017년 현재 전국 물리치료학과와 작업치료학과, 기타 분야에서 200여 명 이상의 연세대 출신 교수들이 후진 양성을 위해 활동하고 있으며, 졸업생들은 학계와 의료계 등에 진출하여 그분의 진실된 가르침과 사랑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1960년대 한국의 물리치료가 걸음마 단계에 있을 때, 구애련 교수가 한국에 와서 사랑과 봉사로 헌신한 그 뜻을 이어서 실천하고자 2017년부터는 KOICA와 연세대학교 물리치료학과 출신 교수들이 선진화된 물리치료 교육과정을 중부 베트남에 보급하는 사업을 3년 프로젝트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국물리치료와 작업치료의 발전을 위해 구애련 교수가 기여한 대표적인 일이 있습니다. 1974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세계물리치료사연맹(WCPT)에 대한물리치료사협회가 가입하는 데 대한민국 부대표로 참석하여 공헌하였고, 1998년 토론토에서 열린 세계작업치료사연맹(WFOT)에 가입하는 데 한국 대표들과 함께 현지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구애련 교수는 퇴임 후 2년에 한 번씩 후학들을 격려하고 연세대학교의 발전된 모습을 보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을 방문하였던 때는 2010년 5월이었습니다. 구애련 교수는 명실공히 우리나라 물리치료학과 작업치료학을 시작해서 완성시킨 재활치료학 분야의 개척자이자 교육자이고, 한국 재활치료계의 발전을 지켜본 증인입니다. 퇴임 후 결성된 구애련 교수 장학회에서는 원금 7,000만 원을 모았고, 2000년부터 2017까지 총 62명의 재학생에게 3,500만 원의 장학금을 전달하였습니다. 2009년부터는 구애련 교수의 제자들이 교수님이 가르쳐주신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물리치료학과와 작업치료학과를 위한 ‘발전기금’ 약 2억 원(약정액 포함)을 모아 연세대학교에 기부하였습니다.


 연세대학교 물리치료학과와 작업치료학과 동문과 교수들은 구애련 교수의 삶이 오랫동안 기억되길 바라며 많은 후학들이 감동받고 감화되어 섬김의 리더로서 성장하도록 결단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백운관 120호를 구애련 홀로 지정해 줄 것을 연세대학교에 요청하였고, 연세대학교 이사회의 승인을 받아 2010년 5월 25일 구애련 홀로 지정되었습니다.

 

 

구애련 교수 원주캠퍼스 방문 (2006.05.20)

 

 1997년 3월초 캐나다로 귀국한 후 돌아가시기 전까지 구애련 교수는 캐나다 토론토에 거주하였습니다. 토론토에서 주로 하신 일은 한국에 파견된 여성 선교사들의 활약을 조사해서 저술하는 작업과 남북한 인권 활동 및 평화통일을 위한 활동이었습니다.


 구애련 교수는 한국에서 행한 재활치료학의 개척 활동과 교육에의 헌신 업적을 인정받아 보건복지부장관표창, 교육부장관표창 등을 받았습니다. 또한 2005년에 캐나다물리치료사협회로부터 국제보건에 기여한 공로로 International Health Award를 수상하였습니다.


 2010년 12월 22일 구애련 교수의 왼쪽 폐에 암이 발견되어 왼쪽 폐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고, 2013년 11월 18일 오전 8시 토론토 서부병원(Toronto Western Hospital)에서 향년 81세에 노환으로 별세하셨습니다.


 돌아가신 후 유언장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유언의 내용이 밝혀졌는데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 이화여자대학교,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에 유산을 나눠서 기부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2016년 12월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와 원주캠퍼스에는 각각 약 5,400만 원이 기부되었습니다. 2018년 추가로 1,500만원을 연세대학교와 신촌캠퍼스에 각각 기부하였습니다.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에서는 학교건축물에 장애인의 접근이 용이하도록 시설개선을 하는 데 사용하기로 용도를 정하였고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에서는 경제적인 사정으로 학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물리치료학과와 작업치료학과 학생들에게 장학금으로 지원될 예정입니다. 구애련 교수는 살아 생전만이 아니라 돌아가시면서까지 한국을 위해서, 그리고 연세대학교를 위해서 베풀고 가신 것입니다. 특히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 물리치료학과와 작업치료학의 태동과 역사를 함께한 구애련 교수의 나눔과 섬김의 정신을 후학들이 계승해 나가길 바랍니다.